장인어른 이야기
나의 장인어른은 키가 작으시다. 대략 160이 될까 싶은 생각이다. 연세는 여든아홉 곧 아흔이 되신다. 매일 아침 마산 무학산 골짜기로 등산을 가신다. 아니 등산이라기 보다 산책이다. 골짜기까지만 가기 때문이다.
내가 결혼하기 전부터 다녔으니 하마 다니신지가 25년이 훌쩍 넘었을 거다. 소식을 하신다. 절대 정량을 넘기는 경우가 없어시다. 물론 약주는 입에도 대지 못하시고...
담배는 사꾸라꽃이 피는 봄날 아침 예의 무학산 산책을 갔다 오시다가 길옆 벚꽃나무 밑에 쓰러지신 이후에 끊으셨다. 마산삼성병원에 입원하셔서 혈관 확장수술을 하시고 퇴원하셨다. 하마 7 ~ 8년은 되신 것 같다.
멀리있는 딸자식, 사위 걱정할까봐 연락도 하지 않으시다가 퇴원무렵에 연락이 되어 아내가 급히 병원으로 갔었다. 의사말이 그 연세에 쓰러지셨으면 대개는 회복하기가 힘드신데 대단하다고 하셨단다. 내가 봐도 대단하시다.
이게 다 소식과 규칙적인 운동, 금주의 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작년인가 88세 미수 생신때는 큰처남이 부동산거래를 잘못하여 큰 손실을 입었는데 자식에게 누를 끼칠까봐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원래 미수란 88세의 파자인데 일본식 한자이고 한국에는 이런 생일잔치가 없었다고 하시면서 내가(당신이) 건강이 좋아서 90은 넘길 것 같으니 미수잔치는 하지 말고 그냥 가족끼리 모여 조촐하게 하자"고 하셨다.
허리를 꽃꽃하게 하기 위하여 방안의 TV를 높다라게 설치를 하여 고개를 들고 허리를 펴야만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지금도 다른 집안의 문집을 만들어 주시거나 교정을 봐 주신다. 물론 당신의 문집도 "내가 죽으면 어느 누가 만들겠나, 문집은 자식이 만들어 주는게 전통이지만 내가 내 문집을 만들었다"면서 몇해전 처가에 갔더니 한부씩 나누어 주신다.
문집에는 주로 산문이 많고 행장, 축문, 비문도 있고 국한문 혼용으로 쓰여 있다. 내가 퇴직하고 한가할 때는 읽어봐야지 하는 생각이다. 문집은 아들 종무(장인어른이 외손자에게 주는 형식으로)에게 주어졌다.
요즘은 장모님의 장을 대신 봐 주신다. 우리가 가는 날(6월 20일, 일요일)에는 장인어른이 들어오시면서 감자 등 장을 봐 왔다면서 보따리를 내 놓으신다. 하루전에는 우리 부부가 시골 어머니집에 있을때 아내에게 전화하여 장모님이 양파, 마늘 등 무거운 것을 들고 3층까지 올라오지 못하므로 미리 좀 사가지고 오라고 하시면서 전화를 주셨다.
이런 장보기 전화는 처음이시다. 그 전에는 부엌 근방에도 안 가셨는데, 큰 변화인 셈이다. 70을 넘기신 초등학교 제자들이 정기적으로 장인어른께 인사를 하시는 모양이다. 어느해 명절에는 무슨 선물 보냈더라면서 우리가 가면 자랑을 하셨다.
정신도 맑으시고 눈도 밝으시고 다만 귀가 조금 어둡다고 하신다. 장인어른이 늘 출근하다시피 하는 사무실이 있는데 장인어른이 제일 연장자이신 모양이다. 젊은 노인들이 오면 같이 친구하자고 하신단다. 주위에 친하게 지내시던 친척, 친구분들이 거의다 돌아가셔서 외로우시단다.
그래서 젊은 노인들이 오면 그냥 대략 20년이 차이가 나도 친구하잔다. 젊었을 적 시절에는 한두살 차이로 선후배로 갈려서 예의 차리고 예의가 있네 없네 했다면서 다 부질없는 짓이라면서..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건강하고 행복한 만수무강을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