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야기

아버지와 아리랑 담배 그리고 필리핀 골프장에서

스티브황 2011. 12. 25. 12:03

"담뱃집에 가서 아리랑 한갑 사와라"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담배 심부름은 내 몫이었다.

 

담뱃가게 할머니(일명 '소로댁')는 아버지 친구의 어머니라

그 할머니 한테는 아들의 친구이면서

그리고 나는 아들의 친구의 아들이라

손자같이 반긴다.

 

담배사러 왔다 하면 의례 그 당시 가장 비싼 아리랑 담배를 주신다.

"그래도 너거 아부지가 제일 좋은 담배를 피운다"면서 즐겁게 담배를 내 주신다.

아들의 친구이기도 하고

비싼 담배를 사 주어서 좋기도 하고

 

아버지 젊은 시절에 그 할머니 아들과 같이 공부를 하고

그리고 장래를 이야기하고

그렇게 잘 지내다...

 

그 시절이 언제인지는 나는 알지 못한다.

아마도 1945년 해방이 되어 일제 징병에서 한국으로 돌아와서

해방된 한국에서 뭔가를 꿈꾸면서 같이 공부를 하지 않았을까

6.25전쟁 직전까지 추측을 할 뿐이다.

 

그후 아버지 친구는 보통고시에 합격하여 서울로 가시고

아버지는 시골에 남아서

무슨 장애물이 있어서 공무원을 하지 못하시고

산림조합에 다시시면서 조그만 농사를 지으면서 자식들을 키우면서

교통과 통신이 없던 시절이라

점점 전해오는 말만으로 소식을 듣다가

그러다 점점 서로간의 삶의 방식 차이로 젊은 시절 둘도 없던 사이는 점점 멀어지고

 

우리들이 서울로 진출하여 대학을 다니고 그리고 취직을 하고

아마도 80년대 초중반이 아니었을까. 그 시절 아버지는 이제사 자신감이 생겼는지

아니면 편리한 교통(고속도로) 덕분인지

서울로 오시면 연락을 해서 몇번 만났셨다고 하던 이야기를 기억한다.

 

그리고 옛날 이야기를 하고 그리고 아들들 이야기를 하면서

아버지도 자신있게 아들들이 서울로 진출하였다고 자랑을 하셨겠지

그 아들은 건대 축산과를 나왔다고 하고

친구분은 건설부 총무과장을 마지막으로 퇴직하고

어딘가에 그 당시 유행하기 시작하던 아파트에 거주한다고

 

서울에 오시면 가끔씩 만나시다가

그러다 그 친구분은 암으로 60대 초반에 일찌기 돌아가셨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그 당시 아버지의 형님들 세분(큰아버지_)께서는 여전히 큰 봉지에 든 궐련을

긴 담뱃대에 엄지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담아서 피우셨다.

담배 공방대 안에 담뱃불이 빨갛게 익어 있음에도  엄지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가면서 피우신다.

그래야 담배연기가 시원하게 빨아지는 모양이다.

힘든 농사를 지으시고 한대 피우시는 담배가 원기제 역할을 하신걸까

그렇게 태평스러울 수가 없고 편안할 수가 없다.

 

어린 맘에도 걱정이 되서 유심이 바라봐도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뜨거워진 곰방대 담뱃불에 엄지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는 것이...

모든 손가락이 거북이 등 같이 딱딱하게 굳어서 담뱃불의 뜨거운 불이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나중에사 커서 저절로 알게되기까지는 알 수가...

장갑도 없고 있어도 아까워서 끼지 못하던 시절이라

맨손으로 그 험한 농사일을 다 지었으니 손 바닥이 거북 등같이 딱딱해 질 수 밖에

무논 바닥 김 매고, 벼 베고, 보리밭 메고, 쟁기질하고, 풀베고, 거름을 치고, 비료를 뿌리고...

 

다 피우시고 나면 담뱃대를 분리해서 송곳 같은 것으로 담뱃대에 집어넣어

돌리곤 후후 불어서 소제를 하고

그리곤 놋쇠 재털이에 '탕탕'터시고는 담배 피우기를 다하셧다.

 

그후 전매청에서 새로운 담배를 내 놓으면서 담뱃값을 슬쩍 올렸다.

이어서 나온 담배가 "파고다"이다.

그후 아리랑 담배는  서서히 사라지고...

내 기억속에서도 사라졌다가...

 

아! 근데, 어제(2011.  12.  24) 그것도 필리핀 팜팡가의 비벌리 골프장에서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고 골프를 같이 치던 일행중에

나이드신 분(수원 세무사)이 그늘집에서 음료수를 마시면서 쉬던중

아리랑 담배를 꺼내서 피우신다.

 

반가운 마음에 "아! 아리랑이네"라고

최근에 다시 '아리랑'담배가 판매되고 있다고

물론 맛과 가격등이 모두 다르겠지만

그 담배 이름이 어린 시절 담배 심부름과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불러일으킬 줄이야. 

 

이래저래 "아리랑"은 우리 모두의 감성과 기억속에 살아서 전해져 오는

DNA같은 존재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