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 종이 이전(1)
종이와 인쇄술을 문화보급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한 쌍의 발명품이다.(p18) 돌, 보존 처리한 동물 가죽, 직물, 납작하게 만든 금속판, 말린 동물의 뼈, 조개껍데기, 도자기 조각 등 다양한 재료가 필기판으로 쓰였다.
- 인도와 동남아 : 야자 나뭇잎과 코코넛 열매 껍질에
- 페루의 잉카제국 : 끈으로 매듭을 묶은 '결승문자khipu'로 곡식의 양을 관리
- 이집트 : 갈대의 줄기를 얇게 갈라서 두루마리, 파피루스Papyrus는 필기 재료의 탁월한 본보기이며, 종이Paper라는 말의 어원이 된다.
- 중동지역 : 점토, 기원전 3천년부터(p19)
# 6세기 로마의 정치가이자 저술가인 카시오도루스Cassiodorus는 파피루스를 가리켜 "인간행위의 충직한 증인"이자 "망각의 적"이라고 칭송했다. 이집트는 수백년 동안 파피루스 수출을 통제했고 심지어 다른 국가와의 거래에서 비장의 카드로 활용되곤 했다.(p25)
종이가 발명되기 수세기 전에 묵자는 "대나무와 비단에 적고 금속과 돌에 새기고 도자기로 그려진 우리의 지식은 후대에 전해질 것이다"라고 했다.
그로부터 500년 후, 로마시대 학자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Gaius Plinius Secundus의 저서 「자연사Natural History」에서 다목적으로 쓰이는 파피루스에 관해 언급하면서 "인간의 문명은 그 수명보다는 기억해 의해 좌우된다"고 하였다.(p20)
나일강 일대에서 무성하게 자랐던(지금은 사라진) 파피루스는 약용이나 식용은 물론이고 옷, 신발, 가구, 배, 돛과 밧줄, 끈, 신성한 장식 등 다목적으로 쓰였다. 구약에서 아기 모세가 강으로 떠내려갈 때 사용된 '방주'도 파피루스로 만들어 졌다.(p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