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전날에는 전 가족이 목욕을 한다. 제사나 차례를 지내기 전에는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고 지내야 한다는 유교적인 전통관습에 따라..
이번에도 어머니, 형제, 조카들과 같이 부곡 로얄호텔 목욕탕엘 갔다. 목욕탕이 발디딜 틈도 없이 혼잡하기는 매 명절 전날의 풍습과 똑 같다. 모두들 다 그려려니 하고 끼어서 불편함과 어수선함과 지저분함을 참고 목욕을 한다.
가족 단위로 많이 온다. 늙으신 어머니나 아버지를 모시고 와서 등을 밀어 드리려는 마음에서다. 내가 부산에 근무할 때 이런 모습이 보기 좋아서 그리고 나도 한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웬지 쑥쓰럽기도 해서 망설이다가 어느핸가 아버지 돌아가시기 한 두해 전에 부곡 목욕탕엘 가서 복잡한 와중에 등을 딱 한번 밀어 드린적이 있다.
그나마 하지 않았다면 엄청 내 마음이 서운하고 죄스러웠을 것이다. 시골 고향 창녕에는 아직도 우리 어릴적 풍습이 남아있다. 명절 전날 전 가족이 목욕하는 풍습이 이제는 집집마다 온수가 나와서 그렇게 않으려니 했지만 오랜 전통으로 내려오는 아름다운 풍습이다.
조상을 정성드려 모시려는 마음에서 몸을 정갈히 하고, 나이 많으신 부모님을 이번 기회에 목욕탕에서 등을 밀어드리고...
둘째 형님을 아들이 없어서(딸만 셋) 조카가 밀어드렸다고 한다. 나는 물론 종무 등을 내가 밀어주고 내 등을 종무가 밀어주고 해서...
어머니는 지금껏 며느리들과 같이 목욕을 가서 며느리들이 등을 밀어 드렸는데 이번에는 조카딸 진아랑 같이 가서 진아가 밀어드린 모양이다.
어릴적 설날에는 운 좋게 목욕비를 주시면 형제들, 사촌들과 단체로 읍내에 걸어가거나 버스를 타고가서 목욕을 하고 온다. 목욕한 날은 온 종일 몸이 개운하다. 겨우내 찬물에 손씻기도 힘들어 손은 온통 때가 끼고 추위에 터서 갈라지곤 했었다.
그래서 목욕을 하면 온 몸이 날아갈것 같은 기분이다. 때는 밀고 또 밀어도 때가 나왔다. 보통 두번씩 밀어내야 그때서 피부가 매끌그렸다. 첫번째 때는 밀려서 가래같이 나오는데 새까맣게 나오다 나중에는 피부색깔과 비슷한 때가 엷게 밀려나온다.
목욕비가 없던 어린 시절에는 솥에 물을 데워서 교대로 큰 함지박에 들어가서 어머니가 차례로 때를 밀어주신 기억이 난다. 바같은 춥고 탕 안은 따뜻해서 좋았는데 어느듯 물이 식어지면서 떨면서 나오던 기억이 새롭다. 작은방 옆 부엌에서 불을 때고 차례로 목욕을 하던 기억이...
어머니는 늘 바쁘셨다. 큰집 놋그릇을 씻을랴, 전을 부칠랴, 떡을 할랴, 그러니 사이사이 자식들 땜에 차례는 지내진 않지만 음식 장만을 하셨다. 전을 부치고, 떡국을 썰고, 끼미를 만들고 시루떡을 만들고, 나물도 무치고.
거기다 재봉틀에다 사오신 천으로 옷도 만들고, 여유가 있으실때는 운동화도 한번씩 사주시곤 하였는데...
큰집 도와주던 일은 큰 형수를 맞이하고서는 조금씩 줄기 시작하였다. 그전에는 늘 어머니가 큰어머니의 지시를 받아서 하곤 하였다. 막내 며느리고 젋고해서 항상 독차지 하였던 모양이다.
설 전날 밤에는 부엌과 헛간 화장실 등에 촛불을 켜시고 치성을 드리신다. 신령님 모두가 다 도와주셔서 자식들이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면서 더욱더 잘 보살펴 달라고 촛불에 한지를 살으면서 치성을 드린신다. 우리 형제 모두가 건강하고 지금까지 사회생활을 잘 하고 있는게 모두 어머니의 정성과 치성 덕분일 것이다.
두손을 비비면서 정성스려 신령님과 드리는 말씀을 몇번씩 유심이 듣고 있으면 모두 가족들 자식들 건강하고 잘 자라게 해달라고 비는 것 뿐이다.. 어떤 틀이나 형식이 있는게 아니다. 그저 정성으로 기도하고 빌면서 마음속에 원하는 것을 그냥 낮은 목소리로 주문을 욀 뿐이다.
그 치성이 그 정성이 이제는 하지 않으신다. 더 이상 옛날식 부엌도 없고 헛간도 없어서 그런가 언젠가 부터 그만 두셨다. 아침까지 밝히시던 춧불도 이제는 켜지 않으신다. 그대신 이제는 절에 가셔서 백일기도를 하신단다.
장소와 대상만 바뀌었지 그 정성, 그 기도는 그대로 살아계신다. 아마도 당신이 살아계시는 날까지 하실 것이다. 그게 어미된 의무이고 보람이라고 여기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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