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을 옛날에서 보면...

등소평의 통찰력과 지도력

스티브황 2011. 2. 20. 21:05

모택동 사후, 4인방을 가두고 등소평이 집권을 한 후에, 문화대혁명 기간동안의 모택동의 죄과에 대한 비판이 무르익기 시작할 무렵 실권을 장악한 등소평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고 한다.

 

모주석의 공과 과가 있지만, 과실보다 공이 더 많다고 본다.고 정의를 내리고 더이상 모택동의 단죄에 대하여 논하지 않았다. 지금도 천안문 광장에 가면 모택동 기념관이 있고 이곳에는 모택동의 시신이 모셔져 있다. 그리고 많은 중국 인민들은 자금성과 천안문광장을 여행할 때 여기를 참배하고 있다.

 

모주석의 잘못은 "조반유리"라는 4자성어를 사용하여 어린 학생들을 동원하여 중국을 통일한 혁명동지들을 타도하였다. 그 와중에 유소기 국가 주석도 학생들에게 끌려다니다 결국 죽었고, 등소평도 하방되어 시골의 농장에서 외양간을 치우는 작업을 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같으면 이정도면 벌써 벌집을 쑤셔 놓는다. 살인의 원흉을 처단하라고...그리고 역사의 과오를 바로 잡아야 한다면서. 그러나 중국의 선택은 우리와 정반대였다. 단죄를 통한 분열보다  잘못된 정책에 대해서는 역사의 판단에 맡기고 묻어두고자 하였다.

 

그결과 중국은 분열되지 않았다고 본다. 예를 들면 국공분열 전쟁과 항일전쟁을 겪은 기성세대들은 중국을 통일하여 전쟁을 멈추고 양반 상놈 남여평등을 이루고 다같이 평등하게 잘살게(결과적으로 다같이 못살게 되었지만) 해 주겠다는 모주석에 대하여 엄청난 존경심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개혁개방으로 잘살게 된 젊은 세대들은 개혁개방을 이끈 등소평을 더 존경한다는 여론조사가 있다.

 

이 두세력이 모주석의 단죄론으로 분열이 되었다면 즉 예를들면 모주석을 지지하는 기성세대가 3억명이고 등소평을 지지하는 젊은 세대가 5억명이라면 분명히 분열이 오고야 말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오늘날과 같은 국론이 통일된 기반위에 경제성장과 안정을 이룰수가 없었다고 본다.

 

그리고 등소평의 통크고 앞을 그리고 역사를 보는 통찰력은 대단하다고 밖에 볼 수가 없다. 그의 과감한 개혁개방과 국론통일로 인하여 지금은 미국과 견주는 명실상부한 대국이 되었으며 중국인 스스로는 지난 100여년간의 서방의 굴욕에서 벗어났고 과거의 대 당나라 시절처럼 세계에 우뚝서게 되었다고 자부를 하고 있고 실제 그렇게 나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대개 정치인들은 어떻게 하였나하고 역사를 살펴보면, 길게 볼 것도 없이 우리의 근현대사를 보면서 비교를 해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남의 장점을 취하는 것도, 역사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