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 선생님이 미신을 믿지 말라고 했다. 한국의 전통 신앙을 싸잡아 부정했다.
미신보다 과학이 좋다고...
그런줄 알았다. 그래서 집에서 굿을 하면 아이들은 싫어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기에...
어머니가 정한수를 떠놓고 무언가에 빌면서 기도하면 외면을 하였다.
어머니에게 말린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 그 과학이 언제적 과학이냐
어머니 시절이 지금처럼 과학의 혜택으로, 의료보험의 혜택으로 그러저러한 걱정을 얼마나 덜어 주었던 감...
명절, 추석이나 구정 설날이 되면 어머니는 무척 바쁘시다.
제사가 있는 큰집에 가서 놋그릇을 닦거나, 전을 부치거나 하면서 도와주고 나서
우리집에 와서 그제사 떡하고 전을 부친다.
제사 지낼 일도 없는데 그렇게...
그리고 집안을 정성스레 청소를 하고
저녁이면 부엌, 헛간, 장독대 곳곳에 촛불을 밤새 밝히고
새벽이면 음식을 장만해서
촛불을 밝힌 곳곳에 기도를 하신다.
기도 내용이야 일일이 모르지만 대개는....
그저 농사 잘 짓게 해 주시고...
그저 남편 건강하게 해주시고...
그저 자식들 건강하고 잘 자라게 돌봐 주시라고...
어머니 당신을 행복하게 해달라는 기도는 눈꼽 만큼도 없으시다
그저 부탁하는 말끝마다 가족과 자식 뿐이다.
곳곳의 신에게 인사를 하고 그리고 간청을 하는 것이다.
두손을 비비면서 연신 고개를 꾸벅이면서 정말이지 뭔가를 간청하는 일구월심의 심정으로, 자세로
언젠가는 할머니 제사는 지내지 않지만 큰집의 허락을 받아서
할머니의 신주를 안방에 모시고 무슨 계기만 있으면 정성껏 기도를 하시고
맛나는 음식이 있으면 먼저 할머니 신주께 모시고
자식들 누군가가 중학교나 고등학교 등에 시험을 치러 갈라치면
할머니 신주께 빌으신다.
어머니에겐 제일 편한 조상신이시다.
제일 부탁하기 좋은 신이시다.
그저 할머니의 몇째 손자가 시험치러 가는데 잘치게 해 달라고
이때는 막무가내 요청을 하시는가 보다.
당신의 손자들인데 잘 봐주지 않으면 어떻하실려냐고
그리고 우리들더러 큰 절을 하라고 하신다.
큰형님에 군대에 갔을때는 시시때때로
장독대에 정한수를 떠놓고 빌으신다.
무사히 훈련 잘 받고 무탈해서 돌아오게 해 주시라고
그저 우리 아들을 알만하고 우리 어머니가 알만한 모든 신들께 부탁을 하시는 모양이다.
손을 비비면서 기도시간이 길어진다.
어머니 젊은 시절에 6.25가 터져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리고 군대가서는 전사통보 한장으로 자식을 여윈것을 많이 보았기에
기도는 더욱 간절하다.
그렇다고 힘이 있고 재산이 있는 집안이면 어떻게 빽을 써서 군대 안가게 하거나
좋은 곳으로 배치해 달라고 할텐데...
어머니에겐 너무 먼 부탁 대상이다
그저 찬물 한그릇으로도 통하는 신들이 제일 맘이 편하게 해 주시는 모양이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많아서 부탁할 곳이 너무 많다.
그렇다고 돈도 없으시다.
그저 맑은 찬물 한그릇을 하얀 사발에 떠서 올려놓고
그저 빌고 또 빈다
어머니가 의지하는 신들은 맑은신가 보다
일체 금품을 받지 않으시고, 찬물만 맛보고 마시는가 보다.
그저 찬물 한그릇이 전부이다.
가족 누군가가 병을 앓아서 잘 낫지 않으면 굿을 해야 하고.
또는 '대를 잡아야 한다고...
정성스레 떡과 과일을 준비하고
무당을 불러서 밤이 새도록 굿을 하신다.
그전에 며칠을 걸려서 아버지에게 설명을 하시고 또 하셔서
허락을 받으신다. 모두 집안을 위하는 일이라고...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무언으로 허락을 하시는 모양이고
안방, 마루, 부엌, 헛간 등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무당은 징을 치면서 주문을 외우고
어머니는 무당이 시키는 대로
그저 빌고 고개를 조아린다.
무당의 입을 빌어서 신의 노하거나 하는 목소리가 들리면
엄청 큰 죄를 지은 죄인인 양
몸둘바를 모르면서 빌고 또 빌으신다.
그저그저 잘못했다고 잘 돌보아 주시라고
그러면 큰엄마나 아줌마들이 추임새를 넣는다
더 크게 빌어라고 어머니에겐 채근을 하고...
그저그저 불쌍하게 잘 봐 주이소...하고 거들기까지 한다.
그래서 어머니는 늘 말씀을 하시는가 보다
그저 잘못했다 미안하다 말만하면 속도 편하고
천냥 빚도 갚는다고...
우리는 구경만으로도 재미있고
온동네 아이들과 아주머니들이 둘러 않아서 같이 구경하는 것도 좋다
그리고 나중에는 떡을 먹을수 있어서 좋다.
장인어른 말씀이 장인어른이 어린시절인 일제시대에는
위궤양이 가장 무서운 병이었다고
걸리면 그냥 죽는 걸로
그리고 엄청 많은 위궤양 환자가 있었다고...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보면 항상 속이 쓰리다고
아마도 위궤양이나 십이지장궤양이겠지
추사김정희 선생도 제주도 유배지에서
항상 속이 쓰린 아픔을 당한다고 편지에 쓰고
수백 수천년을 내려오면서 치료되지 않는 불치의 병인 것을
요즘이냐 약만 먹으면 낫는 병인 것을
내 어린 초등학교 이전 시절에는 동네 60넘는 노인들을 보기가 힘들었다
대개는 폐결핵으로 돌아가셨다.
겨울 아침이면 집집마다 가래침을 뺕아 내는 소리가 들린다.
노인들의 기침과 가래뱉는 소리는 저 배 깊숙한 곳에서 배어 나오는 소리다.
그러다 피가 섞여 나오면 폐렴이나 폐결핵에 걸린 중증환자인 것을 알게 된다.
장례식이 있게되면, 어머니는 우리들에게 다짐을 한다.
폐병이 옮을수 있으므로 절대 근방에 가지말라고 그리고 떡 같은
음식을 얻어 먹지말라고
못 먹어서, 폐에 기름기가 없어서, 너무 건조해서
약간의 못된 먼지에도 폐가 염증을 앓았다.
그렇게 폐병환자가 많았고 그렇게도 많이 폐병으로 돌아가셨다.
요즘에야 뭘 폐병으로 걱정을 하겠냐 마는
내 육촌동생은 여름철 뇌염에 걸려서 가을 접어들 무렵 정신이상 행동을 하더니
병원가서 치료한번 제대로 받아보지도 못하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소설가 이광수의 아들도 폐렴으로 세상을 떳다고 했다.
병에 걸리면 병명이 무언지도
설사 병명을 안다 한들 치료가 가능했을까
그리고 고칠수 있다고 한들 논밭을 팔아야 하고 전 가족이 길거리에 내몰려야 하는데.
나도 어릴적 가래를 뱉다가 피가 섞여 나오면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폐결핵에 걸린게 아닌가 하고 혼자 무지 걱정을 하던 일이...
어머니도 가족들이 병에 걸릴까봐 제일 많이 걱정을 하신거 같다.
굿에는 병명도 원인도 모르는 병이 낫을때 하고
나쁜 병에 걸리지 않게 해달라고 하기도 한다.
액 막이를 하는 셈이다.
모르는 병도 수두룩하고
원인도 모르는 병으로 죽어가고
설사 병명을 안다한들 치료를 할 수가 없고
논밭 팔아서 치료(수술)를 한들 완치가 된다는 보장도 없고
의료보험도 없고
그 시절 그 걱정들을 어떻게 견디며 지냈을까
의지할 곳은 그저 빌고 또 빌고 그리고 착하게 사는 법 밖에...
해마다 어느 날을 잡아서 음식을 장만하고 산속 어딘가 정갈한 바위 위에서
음식을 장만하고 기도를 하고 내려 오신다.
무슨 기도를 하신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가족의 무병장수를 빌었음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누가 어머니의 정성스런 기도를 미신이라고
누가 어머니의 정성스런 굿을 미신이라고
누가 어머니의 촛불켜고 간절히 절하는 것을 미신이라고
누가 어머니의 정한수를 미신이라고 하는가.
가장 순수하고 거룩한 종교의식인 것을
요즘 어머니는 그렇게 옛날처럼 간절히 곳곳에 기도를 하지 않으신다.
자식들이 다 커서 각기 분가를 해서 잘 살기에 이제는 기도 보다는
자식들의 행동거지를 더 믿는 것 같다.
이제는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지 않으신다.
병원에 가면 거의 병명이 나오고 의료보험 혜택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으므로.
그 시절 그 시대에는 어머니의 기도가 가장 저렴하고 최선의 방법인 것을
모든 신들에게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것을 몸소 실천한 것을
지금에사 알 것 같다.
'가족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버지 형제분들이 꿈꾸던 이상향은 무엇이었을까? (0) | 2011.07.29 |
---|---|
아들 면회를 가기까지(병장을 단 아들에게 면회를 가게 된 사연) (0) | 2011.07.26 |
어머니에게 진작에 딸이 있었으면... (0) | 2011.01.17 |
장인어른 이야기 (0) | 2010.06.23 |
아버지 산소에 피어난 들꽃들 (0) | 2010.06.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