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신문에 해군과 해경이 합동으로 "독도방어훈련"을 한다는 기사를 읽던 중
불현듯 1970년대 공군복무 시절 독도와 관련된 훈련이 기억에 떠올라 이렇게 적어본다.
어제 오늘 발단의 원인은 일본이 유튜브에 독도를 다케시마로 표시해서 독도가 일본땅이라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린게 원인이었다. 한동안 잠잠하던 독도분쟁이 재연되었다.
우리나라 외교부는 일본 총영사 대표를 불러서 강력히 항의하고
유튜브에 독도가 일본땅이라는 내용을 삭제하라고 하였으나
오히려 일본은 영어 등 다양한 언어로 더욱 많이 올리겠다고 우리를 약 올리고 있다.
1970년대 후반무렵(아마도 1977년 또는 1978년), 일본 신문사(아마도 요미우리나 마이니치)
경항공기가 독도 상공을 날아와서 사진을 촬영해서 해당 신문사 일면에 독도사진을
올리고 일본땅이라고 주장하였다.
그 기사가 난 다음날 아침 주00 공군 참모총장은 영문도 모른채
청와대의 호출을 받아서 박 대통령으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았고
본부로 돌아온 주00총장은 전날 야간 당직 사령관을 불러서 더욱더 호되게 질책을 하였다고
심지어 워커발로 쪼인트를 깠다는 소문까지 흉흉하게 들렸다.
공군에서는 독도 상공에 일본 비행기가 나타나도록 알지도 못할 정도로
방공망이 허술하고 더구나 다음날 일본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오도록 모르고 있었다는
내용의 질책이었어리라...
당연히 받아야 할 질책이었고 군복을 벗기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으로 여길 정도라는
생각이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생각이다.
정말로 공군의 한 사람으로서 더더구나 대한민국의 하늘을 감시하고 방어하는
방공관제를 주업무로 하면서 더구나 독도상공의 방공을
담당하는 사이트에 근무하면서 이렇게까지 몰랐을까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하였다.
아무튼 이때부터 공군의 방공관제 특기들은 우리나라 주변도서(섬)의 일본식 표기와 발음을
배우고 시험치기 시작하였다.
독도는 다케시마(죽도)
울릉도는 우루시마
거제도는 ...식으로
지금 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외우고 시험치고 그리고 불시점검도 내려오고
원인은 우리에게 있었다.
일본 신문사 항공기는 비행하기 이전에 한국의 비행통제소에 비행계획서(flight plan)를
이미 제출하였고, 별도의 비행금지 통보가 없는 한 자동으로 비행을 하도록 되어 있었고
지금도 그럴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아뿔사 비행 목적지(Destination)가 다께시마(영어로 "Dakesima")로 되어 있었고
다께시마가 우리 영토인 독도인 줄을
최초로 비행계획서를 접수한 비행통제소도 몰랐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보받은 방공통제소의
방공통제 대원 어느누구도 "다께시마"가 "독도"인 줄을 몰랐다.
그저 일본의 어느 비행장에서 일본내 어느 섬으로 가는 비행인줄로 알았었다고.
사실 그당시에는 북한에서 내려오는 적기에만 신경을 곤두세웠고
북한 적기의 침공을 저지하는 훈련만 죽사리 하였지, 일본의 경항공기가
독도에 들어오리라고 누구도 생각을 못하였던 시절이었다.
이 일이 터지고 나서 일명 "독도침공 저지훈련"계획이 만들어 졌고
공군의 전투비행단과 공수항공단 그리고 방공관제소가 합동으로 하는 훈련이었다.
초기에는 매 일주일 단위로 불시에 떨어지곤 하였다.
지금이야 어떻게 하는지 알 수가 없지만 그당시에는 그랬었다.
불시훈련이 많은 이유는 적의 침공이 불시에 이루어지듯이
독도상공의 침공도 불시에 이루어진다는 가정하에 이루어지는 훈련이었다.
사령부에서 불시에 독도침공저지훈련 명령이 떨어지면,
독도에 일본 항공기(또는 전투기)가 접근한다는 가정하에(미리 레이다로 포착하였다는 가정하에)
방공관제소에서 먼저 공수항공단에 C-54 수송기 출격을 지시하여
수송기를 띄우고 나서
이어서 전투비행단의 조종사 비상대기실(Alart Room)에 비상 출격지시를 한다.
수송기는 느려서 일찍 띄우고, 전투기는 빨리 독도상공에 도착할 수 있으므로 늦께 띄우는 것이다.
출격지시에는 전투기 기종과 대수를 명시하고
- 예를 들면, 'Two F-4D'
다음은 방위와 속도를 명시하고
- 'Vector 030' 즉, 북위 30도 방향으로 날아가라는 지시이고
- 'Speed Very Max' Speed' 즉, 최고출력의 속력을 내서 날아가라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출격지시 시간과
- 'Time at 00'즉, 몇시 몇분이라고 녹음기록에 남기고
비상전화기를 주고 받은 당사자간의
이니셜을 교환한다.
- 'Initial α-21'하면 상대방도 이니셜을 댄다.
여기서 출격지시를 할 때 어떤 목적으로 출격한다는
출격목적을 명시하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대개 너무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이다.
이어서 정해진 시간 이내(팬텀이면 8분 이내)에 이륙을 하면
조종사가 무선으로 미리 정해진 무선 채널로 접촉을 해온다.
먼저 전투기의 명칭(Call Sign)을 대면서 방공관제소의 명칭(Call Sign)을 부른다.
- Cyclotron, Cyclotron, This is Panic21, Take off time at 06.이라고 전투기 조종사가
무선 접촉을 해오면
- Panic21, This is Cyclotron, Go ahead.라고 방공관제소의 관제사가 응답을 하면서
출격 목적을 이야기하고, 방위와 고도 스피드를 주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통보하면서
작전에 돌입하게 된다.
독도에 가상의 일본기가 접근을 하고 있으니 저지하라는 지시다.
독도상공에서 가상의 적기(일본의 항공기)를 만나면
한대는 적기의 진로를 방해하는 기동을 하고 한대는 만약의 사태(예기치 못한 공격을 받거나
하는 상황)에 대비하여 엄호비행을 하는 한편 항공촬영을 하여 국가간의 영토분쟁 또는
항공기의 추락등 분쟁에 대비하여 증거로 남겨 놓는다.
경항공기는 가볍기 때문에 팬텀이 지나간 뒷바람에 말리면 추락하기가 쉽다.
그래서 주변 통신유지 및 구조용 겸해서 수송기가 같이 날아가곤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구조 및 정찰용은 헬기가 적격이지만 헬기의 육지에서의 항속거리와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고 또한 통신유지를 위하여 수송기가 이륙하였던 것 같다.
전투기가 레이다 기지에서 멀리 바다로 가면서 그리고 독도상공에서 고도를 낮추면
그 당시에는 통신기술의 부족으로 통신이 끊기는 일이 자주 생기기 때문에
수송기에서 통신유지(일명 '3-way com'이라 부름)를 해주는 임무도 맡는다.
이렇게 한바탕 독도침공 저지훈련을 치르고 나면 어언 근무교대 시간이 다가온다.
아우성치며 씨끄럽던 작전실도 조용해 지면서 임무교대를 위한 작전일지를
마무리하면서 교대자가 들어오길 기다린다.
가끔은 교대시간에도 긴박한 작전이 진행되고 있으면 임무교대는 잠시 뒤로 미루어지고
작전이 종결된 후에나 아니면 어느정도 작전이 진정이 되는 시점에 교대가 재빨리 이루어지곤 한다.
30년도 훌쩍 지난일을 이렇게까지 기억을 더듬어서 기록으로 남길수 있었던 것은
20대 초반의 기억력과 그리고 일본과의 분쟁이라는 뚜렷한
이슈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혹, 이글을 읽는 분들 중에 잘못 기록이 되었거나 아니면
보완 수정 추가할 내용이 있어서 댓글을 주신다면 이 또한 즐거운 보람으로 여기겠다.
<추신>
이 블로거를 쓰고 있는중에 이번에는 일본 외무부가 다시 주일 한국공사를 불러서
독도방어훈련에 대하여 강력히 항의를 하는 모양이다.
일본이 과거 30여년 전 보다 더 쎄게 나오는것 같다.
1970년대 중후반 "독도침공저지훈련"을 매주 하였어도 일본에서
이렇게까지 항의를 하지 않은 것으로 기억이 된다.
작전의 용어에서 보듯이 그 당시는 아예 "침공저지훈련"이었고
지금은 "방어훈련"이라고 순화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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