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야기

선이 누나

스티브황 2011. 11. 29. 14:32

선이 누나는 나의 사촌 누님이다.

그 당시 시골처녀들 처럼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시골에서 농사일을 도우면서 지내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어머니의 친정 동네에 있는

또 다른 먼 시골의 청년에게

부산에서 화학공장에서 일하는 자형과 중매로 결혼을 하였다.

 

연애라고 눈 닦고 보아도 보이질 않던 시절

그저 중매로 만나서...

시골 읍내에 신식예식장이 생기기도 전이라

조선시대부터 해오던 우리의 전통 방식대로

 

집 마당에 천막을 치고

산 닭을 한쌍 묶어서 초례상위에 올려놓고

그리고 쌀을 올려놓고 그위에 싱싱한 대나무 가지를 올려 놓고서

양쪽에 촛대를 밝히고

 

예식순을 한문으로 누군가 낭독을 하고

모두 어리둥절하고 있으면, 다시 우리말로 풀어서...

예를  들면 이렇다.

"북향재배~~"하고 난 다음에는

"신랑 신부는 북쪽을 향해서 두번씩 절을 하고~~"

이는 임금이 있는 북쪽을 향해서 두사람이 결혼식을 올림을

신고하는 것이다.

요즘으로 치자면 국기에 대한 경례 쯤으로 해석이 되겠지

지금 예식장에 국기에 경례를 한다면 다들 웃을 일이지만

그때는 그랬다.

국가관을 심어주는 하나의 계기이기도 했으리라

 

다시 뭐라뭐라 낭독하고

"신랑 신부 맞절"그러면

들러리들이 신부의 양옆에 붙어서서

큰절을 올리도록 도와주고

신랑은 혼자서 큰절을 한다....

 

바깥손님(남자 어른)은 마당에서

안손님(여자 어른)은 방안과 대청마루에 서서

신랑이 잘 생겼다는 둥

신부가 더 낫다는 둥 하는 속에서 결혼식은 치러지고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일학년 때인가인

70년대 중반쯤에 결혼을 하였다.

 

누나가 결혼하던 날 전날 밤에 큰 일이 생기고 말았다.

큰아버지 댁의 재산목록 1호인 큰 황소를 도둑 맞았다.

마굿간의 담벼락에 구멍을 뚫어서

다음 날의 잔치 준비를 하느라 늦은 시간에 모두 잠자리에 든 시간

모두 곤히 잠든 그 시간을

도둑놈은 그 시간을 노렸다. 

 

날이 아직 밝기도 전인 새벽녂에 비상이 걸렸다.

새벽 녁에 큰아버지께서 화장실에 가시다가 소가 없어진 것을 발견한 것이다.

고함 소리에 모두 놀라서 일어나 큰집으로 모였다.

큰아버지 중백부, 숙부 그리고 사촌형제들

 

뿔뿔히 방향을 정해서 소를 찾아 나섰다.

아직 멀리가지는 못하였으리라 보고

나와 사촌 창석 형님은 읍내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중학교를 걸어서 다니던 길이라 길은 익숙하지만

 

어두운 새벽길은 좀 무서웠다.

'탐하'라는 동네를 지나면서 저수지가 나오고

저수지 왼쪽 산길을 돌아서 읍내로 가는데

왼쪽의 나즈막한 산은 읍내의 공동묘지다

 

일제시대에 조성된 공동묘지이고

어린 맘에 몹시 무서웠다.

그 때를 맞추어 공동묘지 위에서

소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저음의 '음~메~...음~메~'

 

나는 소를 찾아서 올라가자고 하고..

형은 아니다 여우의 울음소리라면서

그냥 저수지와 공동묘지 사잇길을 말없이 빨리 지나갔다.

머리카락을 쭈뼛 선다는 것을 처음 체험한 날이다.

 

과연 그때 정말 여우가 소의 울음소리를 냈을까?

황소가 남의 손에 이끌려 가면서 낸 울음소리일까?

지금도 궁금하다. 그러나 알길이 아직도 없다.

영원히 없을 것이다.

다만 추측으로 여우라기 보다 소의 울음소리가 맞았을 것이라고.

 

그리고 읍내에서 산림조합에 다니시던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는 경찰서에 신고하기 위하여 오신 것이다.

다시 우리는 그날이 남지읍 장날이라

남지장의 우시장을 향하여 걸어갔다.

 

남지시장도 그때가 처음이고

걸어서 가기도 처음이다.

그러나 우리가 찾던 소는 보이지 않고

보일리가 없겠지...

소 도둑이 바로 그날 우시장에 내다 팔 엉터리가 없으니까.

거기서 헤메다...

 

다시 걸어서 시골집으로 저녁 으스름에 도착하였다.

그사이 선이 누나 결혼식은 끝나고

우리는 그냥 밥만 얻어 먹었다

소는 아무도 찾지 못하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고...

 

그때 큰아버지의 심정은

큰어머니의 심정은 어땟을까

큰딸이 시집을 가는데도

고집스럽게 큰 황소는 팔지 않았다.

대개는 아들이나 딸을 시집 보내면

소를 팔아서 목돈을 마련해서 결혼 자금에 써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아끼던 큰 황소를...

 

그리고 시집가는 선이 누나의 심정은 어땟을까?

울면서 울면서 시집을 갔었겠지...

 

그 누나의 큰딸이 이번주 말 대구에서 결혼은 한다네

딸 하나 잘 키워보겠다고

돈을 털어 비싼 과외를 시켜서

한양대 무용과 발레전공으로 합격을 하게 하고

그리고 졸업을 하고

발레 개인 강습을 오래도록 하였다.

 

영미라는 아인데, 영미가 대학 들어갔을때

선이 누나 인생의 가장 황금기가 아니었을까

어딜가도 딸 자랑에...

부러움의 시선을 받으면서...

 

이제 그 딸이 시집을 가나보다

서른이 훨씬 넘었을 텐데

지 아버지는 2 ~ 3년전에

환갑의 나이에 갑자기 돌아가셨고

그때 서럽게 서럽게 울던 아이였는데...

 

신랑은 누군지 궁금하다

성실하고 무던하게 같이 잘 살길 바랄뿐이다.

서울에 있다면 가서 축하를 해 주고 싶지만

여기 필리핀이라 그러지 못하고

몇차례 선이 누나와 전화통화를 시도하였지만 받지를 않는다.

아마 딸자식 결혼준비에 몸도 마음도 바쁘겠지...

 

그 선이 누나도 남편을 환갑 무렵에 일찍 보내고

이제 환갑이 훨씬 넘었으리라...

봄날이면 시골 들과 산에서

나물 캐던 그 선이 누나의 모습은 먼 기억속에만 남았고

이제 환갑이 지나고 손자를 보면서 지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