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개를 위하여 만들었으나 원세개는 그 침대에서 잠을 자본적이 없는 원세개의 침대가 있었다. 요녕성 판진시 흥융태구의 미술관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다. 침대위에 까는 요를 빼고는 온통 옥으로 만들어져 있다.
원세개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1885년 조선주재 총리교섭통상사의(總理交涉通商事宜)로 파견되어 조선의 내정에 간섭하며 조선에서 일본과 각축을 벌였으며, 이후 서대후의 신임을 받아서 북양군을 이끌었으며 직례성 총독이 되기도 하였다.
이후 청왕조와 국민당 모두의 추대로 초대 총통이 되었으며 1915 ~ 1916년에는 황제제로의 복위를 시도하다 실패하고 사망하였다. 이때 아마도 장작림이 원세개를 위한 침대를 만들었을 것을 추정된다.
아래사진은 박물관측 안내원의 주선으로 침대에 앉아 찍은 사진이다. 어두운 곳에서 찍은 사진이라 그런지 모두가 흐릿하게 나왔다. 엄청큰 옥덩어리 하나를 부분별(기둥, 윗장식, 바닥 등)로 잘라서 정밀하게 세공한 후 붙였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옥마다 성분과 색깔이 달라서 전체적인 통일된 색과 조화로움이 나타나지 않는다.
중국인들은 고대로부터 옥을 좋아한다. 옥에서 나오는 기가 산 사람에게나 죽은 사람에게나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 생각에서다. 그 좋은 영향력은 알 수가 없지만 중국의 역사 특히 무덤에서 나오는 출토 유물에서 그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베이징의 명 13릉중 공개된 능침(아마 만력황제 ?)의 바닥, 벽, 천장이 온통 옥이다. 보통 대리석으로 만들어도 고급으로 치부되는데 여기는 온통 옥이다. 황제나 제후의 옛무덤에서도 옥으로 만든 옷을 입힌 시신이 발굴되기도 한다.
아래사진은 위사진과 똑같이 옥침대에 앉아서 찍은 김영제 회장의 사진이다. 위사진보다 좀더 선명해서 다행이다. 전면 좌우 작은 탁자위에 놓여있는 등도 옥으로 만들었다. 침대 뒷쪽에는 황제의 상징인 용문양이 새겨져 있다.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의 위나라 황제중 한명(조조의 아들 ?)이 황제의 무덤이라고 도굴되지 않는 무덤이 없으므로 앞으로 옥으로 만든 옷을 시신에 입히지 말라고 교지를 내렸다고 한다. 바꾸어 말하면 그만큼 중국인들은 죽어서도 입고갈 정도로 옥을 좋아하고 사랑하였다.
살아서도 옥 속에서 산다면 그런 호사는 황제나 황후밖에 누릴수 없을 것이다. 원세개가 청 황조를 몰아내고 중화민국을 만들었으나 황제의 영광과 영화를 그리워하여 자칭 황제라 칭하고 베이징의 원각사(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에서 하늘에 그뜻을 고하였으나 그 뜻이 받아들어지지 않았는지 80여일만에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만 사건이 있었다.
원세개가 황제의 자리에 올랐을 때 동북군벌 장작림(張作林)은 무슨 생각에선지 옥침대를 만들어 새로운 황제에게 선물할려고 만들기 시작하였다. 옥침대가 채 상납되기도 전 더더욱 만들어지기도 전(고대에 옥으로 만든 옷은 장인들에 의해 10여년에 걸쳐 만들어 졌다고 함)에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나중에 옥침대는 완성되었으나 주인을 잃어버린 옥침대는 장작림의 후손이 보관해 오다가 가계가 궁핍하여 한 중국인 소장자에게 넘어갔고 감정결과 진품이며 감정가는 3억 위안이 넘는다고 한다. 개인 소장품이지만 보관하기가 곤란하여 판진시의 미술관에 보관해 오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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